전 세계적으로 난무하는 성적 폭력을 일으키고 계속되도록 만든 이념과 제도, 법적 틀, 권력 구조에 ‘수치’를 돌려주려는 학문적 노력이다. 저자는 성 학대를 일으키는 제도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요소를 파헤치고, 그 패턴과 실제 사례를 탐색한다. 동시에 희생자와 가해자가 폭력적인 행동에 부여하는 여러 의미도 살핀다. 이 책은 우리가 현실을 오롯이 이해하고, 폭력 없는 세계, 강간 없는 미래를 상상하는 데 도움을 줄 강력한 도구다.키나르완다어에서
...성폭력을 뜻하는 말인 ‘쿠부호자(kubohoza)’를 풀어 쓰면 ‘해방되도록 도와주다’라는 뜻이 된다. 케추아어에서는 성폭력을 직접 언급하기보다는 “희롱했다”나 “여성으로서의 나의 상태” “나의 존엄”이라고 돌려 말한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아예 ‘강간’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 이 단어가 있다 한들, 법 집행자들이 성적 피해자들의 말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가해자들이 ‘억울하다’며 무고죄를 주장하고, 남자들이 여자친구와 아내의 성적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착각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폭력을 고발할 수 없다. 이렇게 세상은 ‘수치’를 성폭력 당사자에게 전가하고, 그 목소리를 끊임없이 지워왔다. 여성은 자기 삶에서 주체가 아닌 객체가 되고, 좌절은 강간 생존자들의 몫으로 남는다.